20210619
쉼없이 내리는 눈송이와 비릿한 피냄새, 짭짤한 눈물의 맛.
당신은 힘겹게 숨을 내뱉고, 그녀는 홀로 흐느끼고 있네요.
테오도라 블레어:... 싫어... 가지마... 가지 말라고 했잖아.
. ... 내가 곁에 있어주기로 했잖아.
너도 내 곁에 있겠다고 했잖아.
가지마...
물기 섞인 소리에 이별이 실감 납니다. 오늘이 당신의 마지막날입니다.
테오도라 블레어:.... 지금 내 엉망인 모습이 아니라, 오늘 처음 만났을 때 나를 기억해줘. 입술에 닿은 온기만 기억해줘...
이런 나는 보지 마, 보지 않아도 괜찮아...
... 사랑해.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던 적이 없었어.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야.
당신의 오랜 친구이자 연인이던 테오도라에게 차마 전하지 못한 많은 말들이 파도처럼, 목소리로 만들지 못한 당신의 마음이 포말처럼, 산산이 부서집니다.
당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든, 숨을 죄이는 고통은 당신을 덮쳐오고 시간은 흘러갑니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 하이얀 구름이 무리 지어 피어나는 하늘에 별이 떠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도착한 세계, 당신은 이 장소에서…
테오도라 블레어:... 페르디난드...? 정말 너야?
그렇게 말한 테오도라는 주변의 풍경과, 당신, 마지막으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합니다.
다리, 팔... 하나하나 확인하더니 무언가에 크게 놀란 그녀는, 당신이 눈을 감기 전 그녀가 원했던 것처럼,
페르디난드 F. 오닐:맞긴 맞는데, ...그 이야기 내가 해야 할 말 같지 않아?
헤어지던 그날, 처음 보았던 그때의 그 모습으로 당신에게 웃어 보입니다.
테오도라 블레어:... 그런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얼굴에 퍼졌던 놀라움은 곧 사그라들고 부드러운 낯으로 널 바라보았다) 오랜만이야.
흘러가는 구름 아래에 테오도라가 환하게 웃습니다.
페르디난드 F. 오닐:(눈만 깜박, 깜박. 한참 그렇게 서 있기만 하는 거죠.
목숨 내놓고 사랑했더니 왜 자기 앞에 서 있느냐고, 따지지 않기 위해서요. 하지만...하지만요.)
그래, ...오랜만이네. 테오도라. (웃는 얼굴에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느냐고요. 그러니 지금은 저 역시 웃어 보일 수 있는 일이죠.) 여전히 사랑하고?
테오도라 블레어:(바람은 춥지 않게 불고, 푸른 하늘 속 풍경은 마음을 뚫리게 해서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들은 잊을 수 있을 것처럼 만들어 버려서. 제 눈 앞에 사람을 보며 실없이 웃었다.
네 물음에 웃음이 잠시 멈추고, 잠시 말을 고르다가 괜히 툭 물었다) 여전히 사랑할 것 같아?
페르디난드 F. 오닐:(그때서야 아는 거예요. 제 잘못을, 아마 헤어질 때에 그렇게 못된 말로 헤어지지 않아도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죽음 뒤의 일 같은 것은 단 한번 무서워 한 적 없으나. 제 모든 것에 부정 당하는 일은 그다지 반갑지 않거든요. 아직 그런 말이 나오지도 않았지만. 문턱에 섰으니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요. 여전한 미소를 얼굴에 띄고 한 마디 붙이자면,) ...사랑해주면 좋겠는데.
하지만 이제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면, ... ...(간극) 이제 누군가에게 뺏어 올 자신도 없는데, 한 번 정도는 눈 뜨고 속게 해줘.
테오도라 블레어:(사랑하냐는 물음에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사랑할 것 같냐고 되물은 것은 어린애도 아닌데 튀어나온 제 치기였다. 날 위해 한 일, 그 말이 마치 족쇄처럼 여겨졌던 시절이 있었다. 네가 미워죽겠는데, 날 위해서라는 걸 알아 차마 미워할 수도 없어서 무너질 것 같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니 이제와서, 너를 다시 만나고나니 그런 치기의 말이 흘러나가는 것이다
마지막, 그 순간 자신을 밀어내겠다는 일념으로 모진 말을 제게 흘렸던 너를 떠올렸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그 말이 어찌나 아프던지. 그리고 혹시라도 정말, 아주 조금이라도 네가 그렇게 생각했을까 초조했는지. 너는 알고 있을까. 욕심이 많은 것 같다가도 적당히 속이면 속아주겠다 말하는 너를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차라리 다 소유할 것처럼 구는 편이 내 마음에 얹어진 짐을 덜 수 있을텐데. 눈을 느리게 깜빡이고 네게 한 발짝 다가왔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 입을 열었다) ... 사랑하지, 여전히. 그리고 네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그저 끝도 없이 펼쳐진 하늘로 이루어진 공간은 공기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구름은 어디론가, 목적지가 있다는 듯 흘러가고 있습니다.
저 멀리 아주 멀리, [소실점]을 향해 구름이 모이고 있습니다.
페르디난드 F. 오닐:(어린 날 그는 사랑 받고자 남의 눈치를 살피며 자신을 억누르는 삶을 살고. 또, 어느 날은 그런 것 따위는 아무 소용도 없다고 판단해 남의 사랑도 착취하는 삶을 살고. 마지막은, 그냥 저 자신이 사랑하고 싶은 이를 사랑하며 살았었죠. 그때 한 거짓말은 제게도 버거운 것이라 끝끝내 진실을 속이지는 못했더랍니다. 그러니 손만 뻗으면 닿는 자리. 헤어지기 위해 밀어낸 사람이 제 앞까지 왔다는 것이 기묘하기 짝이 없습니다. 제 것으로 삼아 소유물처럼 쓸 수 있었다면 진작 닳아 없어졌을 지도 모를 만큼 사랑 했으니까 그와 동시에 소중히 여기고 싶은 것도 비슷한 크기를 가졌을 일입니다.)
... ...네가 한 대 때리면 그냥 맞아 줄 생각이었는데, 주제에 과분하네. 테오도라. 하지만 내 죽음까지 사랑하라는 이야기는 한 적 없지 않아?
속 썩여서 짜증나게 하는 것도 똑같고, ...맞나보다. 테오도라 블레어.
(닿을까 싶어서 손을 뻗어 볼을 만져 보려고 할 때, ...그 너머가 참 이상하죠. 소실점 을 물끄럼 바라봅니다.)
테오도라 블레어:... 내가 때리면 버틸 수는 있고? (이런 재회에서도 우스갯소리는 참으로 쉽게 흘러나왔다. 슬퍼할 만큼 슬퍼해서, 재회 만큼은 슬프지 않길 바랐던 마음이 날 도운 걸지도 모른다) 죽음까지 사랑한 건 아니야. 너라는 사람을 사랑했는데, 그걸 그만둘 수 없었을 뿐이야.
... 그리고 속 썩이는 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순간 느리게 감겼다 떠지는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은 이어졌다) ...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 말도 안 듣고. 그냥 내버려두라고 했는데 굳이 바꾸겠다고 해서... (시선을 들고 다가오는 손을 바라보았다)
테오도라 블레어:...? (네 시선이 자신 너머 어딘가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보이는 소실점, 구름이 모이고 있었다. 잠시 그곳을 바라보다가 곧 입술을 달싹였다) 멀구나....
(곧 쓰게 웃으며 널 바라봤다) 저기로 가볼래? 조금 걸어야겠지만.
페르디난드 F. 오닐:아니, ...못 버틸 거 같은데. 때리고 싶다고 했으면 책상 앞에만 앉아 있던 사람이니까 적당히 해달라고 빌어야지 않겠나 싶다. 그럼 혹시 알아? 테오도라가 한 번쯤 그렇구나, 하고 봐줄지도. ... ...(실없는 소리라는 자각은 있는 모양인지. 가볍게 웃어 넘기고는)
그 날 죽을 사람이 나였으면 테오도라 너도 그렇게 했을 거 같지 않아? (그러나 그 말에 후회 같은 것은 없고. 아마 너 역시 그랬을 것이라 거의 확신과도 같이 맹신하며, 나지막한 소리로 속삭입니다.)
가만히 두고, ...옆에서 죽는 순간까지 기다릴 수 있어? 아, ... 나 그런 거 할 줄 몰라. 테오도라.
그러니까 너무 속상해 마. 테오도라 네가 바꾸지 못했던 건 죽을 사람도, 그 날 상황도 아니고. ...그냥 내가 널 사랑하는 일이었으니까.
(그제서야 제 뻗은 손을 거두고, 제 앞머리를 만지작 거리죠. 한참이나, ...) 그래. ...손 잡을까?
테오도라 블레어:... 하지만, 그 날 죽을 사람은 나였어. 네가 아니었잖아. (괜한 억지를 부렸다. 네 말대로 만약에 그 날 죽기로 결정 된 것이 너였다면 나는 너와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기다리지 못하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끝없이 괴로워 하다, 결국에 같은 선택을 하고 네게 상처를 줬겠지. 하지만 감정은 이해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다음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되어서도 자신을 달래듯 말하는 이 사람이 밉고, 야속하지만 도저히 밉다고, 야속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어떻게 다시 만났는데, 그저 좋은 말만 해주고 싶은데...
내밀어졌던 손이 다시 되돌아가고 나는 물끄러미 너를 바라봤다. 아, 머리를 만지작거리는 습관, 변하지 않았구나. 당연한 일인 것을 알면서도 그리 생각했다. 그 습관이 반가워서, 마음을 짓누르던 감정을 잠시 내려둘 수 있었다. 숨을 한 번 들이쉬고 손을 내밀었다) 응, 손잡아줘.
페르디난드 F. 오닐:누가 그래? 그 날 테오도라 블레어가 죽는다고. ... ...난 용납 못해. (물론, 그 날 테오도라가 죽는 일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중간에 살릴 수 있는 법을 알지 않았던가요. 만일 끝까지 그가 무지 했더라면, 그 날 죽는 것은 테오도라가 되었을 테지만. 알았잖아요. 테오도라가 살 수 있는 방법.)
내 고집 못 꺾는 거 알잖아. 난 테오도라 너한테 미움 받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 ...(가볍게 미소 짓는 얼굴을 하고도 아주 침울한 목소리를 하죠. 아주 조심스럽게 내민 손을 잡고 걸음을 옮기며 다시금 입을 뗍니다.)
테오도라 네가 없는 세상도, ...테오도라 네가 원치 않는 방법으로 연명하는 것도. 싫은데 어떡해?
테오도라 블레어:(용납 못한다고, 억지스러운 말에 입술을 꾹 물었다. 진짜 용납 못하는 게 누군데... 너를 만나면 늘 감정이 이리저리 요동쳤다. 한없이 좋다가도 답답해지고, 화가 났다가도 속절없이 흔들렸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욕심은 너만이 아니라 나도 가진 것 같다. 요동치는 감정이 가시밭길이라 말해주는 듯 했으나 가지고 싶으니,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욕심 낸 사람이 지고 받아들이고 맞추는 수 밖에)
... 너 미워. 재수 없어. (불퉁한 목소리로 그리 중얼거렸다. 답이 뻔히 보이는 걸 질문이라고 주는 것이 얄밉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잡은 손은 놓치 않을 것처럼 꽉 맞잡았다. 그 날 잡았던 손은 참 차가웠는데, 스쳐지나가는 내 생애 가장 끔찍한 기억에 숨이 잠시 멎었다)
... 미운데, 그만큼 좋아. ... 이렇게 멍청이처럼 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잠시 멎었던 숨을 감추기 위해 농조로 말을 이었다)
두 사람은 천천히 걸어 구름의 방향을 향합니다.
당신의 삶은 고통을 버텨내는 것이 고작이었으며 살아있음의 증거는 아픔이었지요.
눈을 통해 파란 하늘이 펼쳐지고, 귀를 통해 테오도라의 목소리가 들리고, 살갗으로 바람이 느껴집니다.
당연히 당신이 가졌어야 했던 그 감각을 이제야 손에 쥐었습니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신의 옆에는 연인인 테오도라도 있습니다.
불현듯이, 그러면서도 필연적으로 당신은 이질감을 느낍니다.
페르디난드 F. 오닐:
정신
기준치: |
50/25/10 |
굴림: |
16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 그렇다기엔 테오도라는 너무 여유로워 보입니다.
테오도라 블레어:소금사막이 이런 느낌이려나. 한 번쯤은 가보고 싶었는데...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페르디난드 F. 오닐:살아 있으니까 다음에 가면 되는 일이지 않나 싶다. ...같이 못가서 미안해. 그러게 나보다 좋은 사람 만나라니까. (이상하네. ...싶어 머뭇거리며 손을 다시 고쳐 잡아보고는, 이것도 말이라고.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툭 꺼내고는 따라 주위를 둘러봅니다.)
테오도라 블레어:... (네 말이 맺어지자마자 고개를 휙 돌려 널 바라봤다. 표정이 영 좋지 못한 것이 네가 한 말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네 앞으로 가서 서서 빤히 보다, 결국 못 참겠는지 네 코를 아프게 꽉 잡다 놓았다)
... 사과만 해도 속 터져 죽겠구만, 뭐? 좋은 사람 만나라고? 지금 너 좋아한다는 사람한테 할 말이야?
페르디난드 F. 오닐:아니, 왜. ... ...(꽉 잡힌 코가 아프고, 괜히 억울하기도 해서. 눈치만 살살 보고 있는 눈이죠. 그렇게 눈치 본다고 해도 억울함이 가시지는 않지만요.)
그게 싫으면 평생 나만 보고 나만 기억하고, ...나만 눈에 담으라고 할까 싶다. 테오도라 그렇게 해줄래? 바닥도 없는 바닥에 갈 곳 없는 애정 같은 거 쏟으면서 일평생 그러고 살 생각 있어?
조금만 더 있으면 그렇게 해달라고 빌게 될 거 같기는 하다. 나한테 미련 같은 거 두게 하지 마. 넌 과분할 정도로 날 사랑하지만... ...
나는 널 오도 가도 못하게 붙잡고 사랑이라는 수렁에 밀어 넣고도 만족 못할 거 같은데.
죽어서까지 꼴 사납게, ...멍청한 건 나야. 테오도라.
테오도라 블레어:... 혹시 모르잖아? (손을 내리고 너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그래달라고 하면, 내가 그럴지도 모르잖아. 내가 하는 말이면 모른 척 속아주겠다는 네 말처럼, 나도 현실이니 올바른 방식이니 다 모른 척하고 네 말처럼 변할지도 모르잖아.
(이런 말을 내가 하게 될 줄이야. 허무함 섞인 웃음이 새어나갔다. 사랑이 전부는 아니고, 사랑이 끝나도 삶은 계속 된다는 것을 안다. 알고 있는데... 너를 보면 바보 같게도 사랑이 전부처럼 느껴지고는 했다. 미쳐버린 게 분명하지,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할 수 없지. 그렇게 실패하고 배신 당해봤으면서 나는 몇 번이고 자신을 내어놓길 자처하다니. 그러니까 나는 이게 두려웠던 것이다. 사랑한다고 한 번 인정하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널 사랑하기로 다짐하면 걷잡을 수 없을 거란 걸 알았으니까. 이 사랑이 그동안 내가 거쳐갔던 사랑과는 본질부터가 다르다는 걸 깨닫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미 다 늦었다. 애초에 처음부터 시작조차 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내가 나를 대신해 죽기를 자처한 널 말릴 수 없었던 것처럼 널 사랑하는 것은 차라리 운명에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에)
... 우리는 똑같이 꼴 사나워. 너는 만족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거든. 네가 곁에 없는 시간은 너무도 길고, 네가 곁에 있으면 단 1초조차 아까워져. 늘 내 시야에 있었으면 좋겠고, 내 편을 들어줬으면 좋겠고, 네가 상상한 미래에 항상 내가 있었으면 바랐어. ... 이렇게 될 줄 알아서 널 사랑하길 망설였던 거야. 네가 날 이렇게 만들 줄 알았거든.
그 말을 하고 테오도라는 다시 당신의 손을 잡아 당깁니다.
얼마 걷지 않아 소실점, 구름이 모이는 장소에 도착합니다.
페르디난드 F. 오닐:너무하네 테오도라. ... ...네가 그렇게 나오니까. 내 생각만 해달라고 못하는 거야. 그런 말을 듣고도 어떻게 나 하나만 보고 오직 사랑만 해달라고... ...부탁 할 수가 있겠나 싶다. 네가 먼저 날 변하게 했었으니까. 테오도라 너는 그냥 그 자리에 있어도 돼.
(아주 자그만한 여지만 있다면, 저 자신을 가끔 봐주기만 한다면, 세상과 테오도라를 공유함에 있어 그것이 바른 방향이라 시인하며. 참고 넘어갈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든 것은 테오도라였죠. 타인처럼 읽고 쓰고 이해하며 사랑하는 것보다는, 테오도라 블레어라는 사람을 외우면서. 또 그렇게 사랑하면서. 탐욕이라는 가장 큰 가치 앞에 저 자신을 내놓고 사는 것도 오직 테오도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현실이니 방식이니 내려두고 저를 위해 변한다는 이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고, 어떻게 저 자신만의 것으로 둘 수가 있겠어요. 제게 그 말은 세상에 나온 순간으로 이미 일어난 일과 같은 것입니다.
때때로 그마저도 못 참겠어서 투정 부리듯 일단 달라고 할 때가 종종 있지만. 테오도라의 말대로 그 사랑은 제게 과분하고. 너무 거대하니까요. 온 세상 사람에게 멍청하다는 이야기를 듣더라도, 가져 본 것과 가진 것 중에 가장 귀히 여기는 것을 뽑으라면. 1초의 고민도 없이 테오도라를 부르고 말테니까요.)
아, ...의외네. ... ...테오도라. 다른 건 몰라도 내 미래는 테오도라 너한테 맡긴 거나 다름 없었잖아? 난 몰랐어. 아, 비밀인데. ...널 사랑해도 되는 지 의심한 적 있거든.
... ...역시 그만 사랑하고, 멍청한 짓 관두고 정신 차리라는 말. 못하겠네, 미안해. 책임도 안 질 거면서. 사랑은 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예전부터 난 이랬잖아. 이해하지? 그래도 나 때문에 모든 걸 바꾸지는 마. 괜찮으니까. ... ...
당신의 시선 끝에 구름이 향하는 장소가 보입니다.
페르디난드 F. 오닐:...? (사진 주워보러 갑니다. 이게 무슨 일)
테오도라 블레어:(욕심은 많은데 그걸 제게 다 보여주진 않는다. 어째서 그러는지 알고 있다. 비록 그 이유는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내 욕망을 꺼내 놓는 순간, 네가 그걸 이뤄줄 걸 알기 때문에 꺼내놓지 않았다. 갖고 싶다면 넘겨 줄 것이고 손을 잡아 달라면 잡아 줄 것이란 걸 알았다 . 그러니까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방식은 한쪽이 다른 한 쪽을 위해 희생하거나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사랑했던 '나'를 지켜나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네가 네 욕망을 보여주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내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랗고, 깊기 때문일까. 마주하면 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거나, 내가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거나 해서. 나는 네가 다 보여준다고 해도 사랑할텐데, 네 바닥조차 사랑해보겠다고 내민 손이었으니까)
우리는 서로를 참 많이도 의심한 것 같아.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래도, 이해 해. 널 사랑하기로 한 순간부터 전부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바꾸지 말라고 해도, 이 바꿔 놨으면서.
페르디난드 F. 오닐: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9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사진을 뒤로 돌려보면 익숙한 필체가 보입니다.
테오도라 블레어:(네가 들어올린 사진에 시선을 두었다. 곧 아, 하는 작은 탄성을 흘리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 이게 왜 여기에...
페르디난드 F. 오닐:...나 때문에 테오도라 네가 뭔가를 포기하거나, 그걸 당연해 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해서. 그런 건 달라진 적 없잖아. 안그래도 돼. (사진을 앞 뒤로 다시 돌려보고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입니다.)
아까부터 물어보고 싶었던건데. ... ...테오도라 네가 왜 여기 있어?
테오도라 블레어:나는... 한 번도 무언가 포기한 적 없는데. (그리 말을 중얼거렸다. 네 물음에 가만히 네 얼굴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 네가 그렇게 죽고, 일주일이 되는 날 다시 그 공원에 가봤어. 크리스마스가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여전히 화려한 공원이더라. ... 근데, 그게 너무 화가 났어.
화가 나는데, 대체 뭐가 그렇게 화나는지 알 수 가 없었어. 그냥, 다 이상했어. 무엇 하나 달라진 것 없는데... 나도 여전히 여기에 있고 사람들도, 그 가게도, 하늘에서 내리는 눈조차 그대로인데 네가 없다는게... 나는 그냥 그게 힘들었어.
... 그래서 도망치듯 거길 떠나고, 몇 년은 근처에도 가지 않았어. 그러다가... 3년 쯤인가, 다시 그 공원에 갔더니 조금씩 변해 있더라고. 내가 그렇게 화가 났던 풍경은 사라지고 가게도 새로 생긴 것도 있고 사라진 것도 있고... 그 날 오랜만에 다시 사진을 찍으며 들었던 생각이야, 너도 이 풍경을 같이 봤으면 좋겠다... 라는
(너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은 채 그저 옅게 웃었다) ... 내가 찍은 사진을 너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 기뻐.
사진에 찍혀있는 풍경은 조명이 흔들리고 함께 찍힌 사람들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습니다.
페르디난드 F. 오닐:
SAN Roll
기준치: |
50/25/10 |
굴림: |
19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당신이 사진 속 풍경이 움직인다는 걸 인지하자, 시야가 흔들립니다.
테오도라도 같은 감각을 느끼는지 휘청이는 게 느껴집니다.
두 사람의 세상이 한 바퀴 돌고, 풍경이 뒤집어지는 감각을 느낍니다.
싸아아, 바람에 나무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해는 가장 높은 곳에서 빛나고 있고, 어쩐지 아직도 별은 하늘에 떠있어 아래로 아래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당신가 풍경을 확인하고 나서 테오도라를 찾으면….
조금은 자란 듯한 테오도라가 당신를 보고 있습니다.
아까까지 보고 있던 기억 속 그 모습이 아닙니다.
길어진 머리카락은 어깨를 넘어 등에서 흔들리고,
당신과 함께 한 그 때와는 인상이 달라졌습니다.
당신의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는 테오도라입니다.
나이를 가늠해 보면 서른 중반 즈음 되었을까요.
페르디난드 F. 오닐:
SAN Roll
기준치: |
50/25/10 |
굴림: |
96 |
판정결과: |
실패 |
나이를 먹은 테오도라는 주위를 둘러보다 당신을 보고 웃습니다.
테오도라 블레어:모처럼 돌아왔는데, 걸어볼까?
페르디난드 F. 오닐:... ...테오도라 너, ...아, 그래. 그러자. (얼떨결에 옆에 서서, ...손을 내밀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고민하며 기웃거립니다)
테오도라 블레어:(망설이는 네 손을 잡고 이끌었다.돌아보자 말해놓고서 네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작게 웃었다가, 곧 그 웃음이 씁쓸해지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크리스마스에 다시 오자고 해놓고, 약속은 다 어겼네.
페르디난드 F. 오닐:그건, ... ...사람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잖아. (온통 내가 모르는 공백에 대한 것들을 묻고 싶은 눈치면서. 약속 어긴 것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요. 여전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얼떨떨한 것이죠.)
테오도라 블레어:그 말도 얄미워 죽겠네... (하지만 자신도 더 따질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이미 일어난 일이고 후회는 널 만나기 전까지 몇 번이고 했으니까.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나갔다)
그렇게 걸어나가다 보면 공원 중앙, 벤치에 도달합니다.
텅 빈 공원, 누군가 그 벤치에 앉아 있습니다.
페르디난드 F. 오닐:테오도라 네가 언제쯤 날 얄밉지 않다고 할 지 궁금하긴 하네. ...얼굴은 왜 그래? 남 걱정 시키지 말라니까. 말 안 듣기는. ...
(누가 앉아 있나요? 시선을 돌려 바라봅니다.)
테오도라 블레어:... 다쳐도 다쳤다고 잔소리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농조, 괜히 제 상처를 손으로 쓸었다)
누구인지 확인해보면, 입술을 꾹 다물고 있는 테오도라 입니다.
당신의 손을 잡은 테오도라도 우는 자신을 봤는지 놀란 눈치입니다.
두 사람이 테오도라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이 테오도라는 당신이 기억하는, 그 시절의 테오도라 임을 눈치챕니다.
테오도라는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홀로 숨죽여 울고 있습니다.
울음을 참는 건지, 눈가는 붉게 물들어 있습니다.
누군가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슬픔을 아나요?
당신은 떠나가는 입장이기에,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저 아이가 느끼는 감정은 아마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이겠죠.
문득 자신이 죽고 일주일 뒤에 공원에 찾아갔었다는 테오도라의 말이 떠오릅니다.
테오도라 블레어:(당혹스러운 얼굴은 곧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씁쓸함이 되었다. 차마 그 모습을 자신이 보고 싶진 않은지 뒷걸음질 쳤다) ... 저런 모습,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닌데. ... 세상이 참 날 안 도와줘.
페르디난드 F. 오닐:... ...난 테오도라 네가 (한참이나 말을 고르죠. 후회는 여전히 하지 않지만, 이는 사랑하는 이에 대한 필연적인 죄책감이지 않겠어요. 모르고 떠날 때와. 떠난 뒤의 알게 됨은 다르니까.)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다.
테오도라 블레어:(헛웃음을 흘렸다. 다시 시선을 돌려 울음을 삼키는 나를 바라보다가 네 팔에 이마를 툭, 기대고는 말했다) ... 너는 내가 널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페르디난드 F. 오닐:(애써 시선을 떼고, 제게 기댄 사람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붙이죠. 아니라고. 그런 적 없다고, 다만) ... ...언젠가 네가 날 버려도 그럴만 하다는 생각은 해.
테오도라 블레어:... 버리지 못할 만큼 사랑할 거라고는 생각 안 해 봤어? (잡은 손에 힘을 풀었다. 조금 허무해지기도 하고, 속이 상하기도 하고. 내가 보여준 애정이란게, 네게 확신이 되어주지 않았나 해서) ... 내 잘 못 같네.
페르디난드 F. 오닐:그렇게 날 사랑하게 할 자신이 없어서, ...네 탓 아니야. 알잖아 테오도라. 나는 사랑 받고 싶어서 아등바등 하고. 또, ... ...(풀리는 힘에 저 자신은 다시금 손을 고쳐 잡고.)
또. ... ...말했잖아. 의심한 적 있다고. ... ...내가 널 사랑해도 되는 지. 아, 내 문제야. 테오도라. 그러니까 그런 말 마.
대화를 하다 보면 울던 테오도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눈물을 닦고 뒤돌아 사라집니다.
화면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풍경 밖으로 사라져버렸습니다.
테오도라가 앉아있던 자리에는 [사진]이 하나 남아있습니다.
테오도라 블레어:(고쳐 잡은 손을 마주 잡았다. 이게 어떻게 네 잘못이 될 수 있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속이 상해 말을 꺼내지 못했다. 울던 자신이 떠나가는 것을, 완전히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도 계속 좇았다) ... 안 괜찮아. 하나도 안 괜찮았어. ... 정말 하나도, 아무것도 안 괜찮았어. (그리 중얼거렸다)
페르디난드 F. 오닐:(뒤돌아 사라지는 모습을 눈에 담으며 아주 조금은 충격 받은 듯한 얼굴을 하던가요. 언젠가 자신의 입으로 테오도라에게 시간이 모두 해결할 것이라는 말을 올린 적이 있다는 것도, 그리고 지나갈 사람으로 치부하라는 말도 사실입니다.) ... ...미안해. 아, 테오도라 너 미안하다는 말 싫어할텐데. 그래도, ...미안해. 테오도라.
나는 널 위해서 그랬는데, ... ...아닌 모양이다. 전부. ... ...널 위한 일이 아니라, 내 작은 위선이었나 봐. (작게 덧붙이며 앉아 있던 자리로 천천히 다가갑니다.)
테오도라가 앉아있던 자리에 남은 사진입니다.
페르디난드 F. 오닐: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95 |
판정결과: |
실패 |
테오도라 블레어:.... 날 위해서란 걸 알아. 그래서 더 힘들었어. ... 지금도 봐. 난 너한테 무엇하나 따질 입장이 아니야. ... 사실, 따지고 싶지도 않지만... ... 어떻게 다시 만났는데. (손을 꽉 잡았다. 좋은 것만, 좋은 것만. 내가 느꼈던 비참함을 숨기고 방긋방긋 웃기만 해야 한다고 해도 그래도 좋으니까... 네 옆에 서서 사진을 바라봤다)
(네 집, 익숙하고 이제는 낯설어진 공간) ... 그 때, 아무 일도 없었으면. 평소처럼 데이트를 하고 너의 집으로 돌아갔으면, 말하려고 했는데. (힘빠진 웃음을 걸고는 말했다) 같이 살까? ... 하고.
페르디난드 F. 오닐:... ...따지고 싶으면 따져도 되는데. ...테오도라. 지금은 괜찮아? 아닌 거 같네. 날 그렇게까지, ... 사랑해? 억지로 참고. 좋은 기억만 남겨야 할 정도로?
... (사랑하지 않음을 믿지 않은 것이 아니고. 그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오랜 습관처럼 남은 공허가 만들어 낸 간극. 그걸, 죽고 난 뒤에야 알게 되다니. 참 아이러니 하죠. 이렇게나 사랑 받고 있었는데.)
역시 ... ...억울하네.
무르는 법 없다고 이 핑계 저 핑계 다 대면서. 같이 살고. 결혼도 하고, ...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
테오도라 블레어:... 좋은 기억으로 남겨야만, 오래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너의 마지막보다, 날 향해 웃어주던 표정을 먼저 기억하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 탓하지 않았고, 비참해지지 않으려 했고, 울지 않으려 부단히 애썼다. 억울하다는 말에 어렵게 웃어보였다)
... 응, 억울하네. ... 나도 오월의 신부, 되어 보고 싶었는데. 네 성으로 불려보고, 네 공간에 내가 있는게 당연해져보고 싶었는데.
노을이 지면서 세상이 다시 한 바퀴 도는 감각이 느껴지고
붉게 물든 노을은 하늘을 수놓고, 태양은 지평선을 향해 달려갑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곳은 고즈넉한 주택의 정원,
그 바람을 맞고 있으면 뒤에서 목소리가 들립니다.
테오도라 블레어:지나온 풍경일 뿐이지만 달라진 게 없네.
단정한 올림 머리는 당신이 기억하는 그 색보다 흐려져 있고
짙은 와인색 원피스는 고급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테오도라와 똑 닮은 눈동자를 가진, 중년이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페르디난드 F. 오닐:저기, (테오도라 맞아? 하고 물으려다가 관두는 거죠. 질문 대신 손을 내밉니다.) ... ...그래. 그러자.
테오도라 블레어:(잠시 자신을 바라보는 네 모습을 보다가 부드럽게 웃었다. 네 손을 잡고 천천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 어때?
우리 집은?
당신이 집안을 둘러보면 정돈된 집안의 풍경이 보여옵니다.
정원이 딸려있는 목조로 된 주택, 테오도라가 오랜 시간을 들여 장만했을 것이라 생각되는 이 집에는 곳곳에 테오도라의 흔적이 머물러 있습니다.
페르디난드 F. 오닐:아, ... ...
우리. (한참 바라보던 시선을 떼고 걸음을 옮깁니다.) 우리집, ...같이 살아 본 적 없어서 모르겠는데.
테오도라 블레어:(함께 살아 본 적 없다는 말에 잠시 손을 꼼지락거리다 웃었다) 같이 살았으면... 딱, 이런 집에서 살았을 거야. 나는 식물을 좋아하니까, 정원도 있고.... 이제 너한테 맡기는 게 아니라 스스로 돌보는 법도 배워서 꾸몄을 거야.
(집 안으로 들어와 말을 이었다. 그랬을 거라는, 오지 않았던 이야기였지만. 목소리만큼은 부드럽고, 다정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처음 보는 게 너였을 거야. 나는 아침에 운동을 하곤 했으니까 먼저 일어나 운동하고 씻고, 너를 깨우겠지. 그럼 너도 가장 처음 보는 사람이 내가 되는 거야. 어때, 좋지? 그리고... 같이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하고... 퇴근 시간이 비슷하면 같이 장을 볼 수도 있겠지. 야채를 더 먹어라, 고기를 더 먹어라, 하고 다투기도 하고. ... 아, 우리한테 같은 향이 나겠다. 옷도, 몸도 전부.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잠들기 전까지 같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겠지. 이야기 없이 서로 다른 일도 할 수 있을 거고. 그래도 계속 같이 있었을 거야 .
... 그리고... 그리고 또... (오지 않았던 이야기. 올 수 없었던 일. 실없이 그런 이야기만 주절거리다 뒤늦게 입을 다물었다. 슬퍼할 만큼 슬퍼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슬픔은 맺어지지 않았다. 숨을 천천히 고르고 널 보며 웃었다) 아, 차 마실래? 음료수도 있을텐데.
페르디난드 F. 오닐:아, ... ...(지금 이게 무슨 말이야? 하고. 조금 얼얼한 표정을 가진 채 이야기를 듣고는, 입을 열죠. 하는 것은 제법 뻔뻔한 말입니다.) 그런 일이 하고 싶었으면 미리 이야기 하지 그랬어, 테오도라.
하루 중 가장 먼저 너를 보고, 제일 늦게 테오도라를 보는 걸. ... ...누가 기대하지 않겠나 싶다.
네가 깨워줬으면 해서 괜히 자는 척 하고. 함께 식사 하는 게 좋아서 식탁 앞에 앉아 기다리고. ...테오도라 너랑 내가 공통점을 가지고, 그게 너무 당연하다고 느껴서 이상하지도 않을 정도로 함께 살았을텐데.
...나는 테오도라 네가 부르면 옆에 있고, 함께 하고. ...그렇게 그게 내가 제일 바라는 일이 되었을 거 같지 않아?
아, ... ...나 계속 억울한 이야기만 듣는 것 같은데. 그래도 테오도라. 이미 일어난 일은 이미 일어난 일이잖아.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네가 내 생각만 하다가 평생 혼자 사는 건 아닌가 싶어서 고민이 되었다가, 또 나 때문에 거기까지 생각했나 싶어서 기뻤다가 하거든. (마주 보면 아주 조금, 침울해진 얼굴을 하고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대답하죠.) ... ...이게 싫어.
나는 아무거나 줘도 돼.
테오도라 블레어:(네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만약이, 그게 너무도 간절했었다. 서로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는 건 분명 어렵지 않은 일이었을텐데. 네가 떠난 후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되었다. 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면서 마지막은 내 걱정으로 끝나는 것이 네가 떠난 이라는 걸 몇번이고 확인시키는 듯 했다. 조금 침울해졌던 얼굴에 손을 뻗었다. 전보다 조금 더 거칠어진 손을 의식해 조심스레 뺨을 쓸다가 떨어졌다)
... 혼자 살아가기로 하는 것도, 너만 생각하기로 한 것도. 결국에는 나의 선택이야. ... 너도 알잖아? 나는 남이 내 선택을 결정하게 내버려두지 않아. .. 내가 선택했고, 그에 따른 책임도 내가 진 거야. 그러니까...너는 고민할 필요 없어.
그말을 끝으로 테오도라는 당신을 거실로 이끌어 앉히고는 주방으로 향합니다.
거실을 둘러보면 여러 가구 중에서도 [거울]이 눈에 들어옵니다.
페르디난드 F. 오닐:나한테 다 주겠다고 말하더니. 거짓말인 모양이다. (그저 지나가는 하소연에 불과한 것이죠. 제 뺨에서 멀어지는 손에 아주 잠시 아쉬워 하면서도 결국 표정을 푸는 것은 어찌보면 제게는 당연한 일입니다. 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말하니까. 또한 그게 자신을 위한 배려가 되니까요.)
테오도라 너는 날 잘 안다면서. 그런 말을 해. 원하는 것도 안 들어주고. ... ... 없는 죄책감도 가져다 반성하게 만들고... 그렇게 시험에 들게 해서, 결국 내 잘못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더라.
그러니까 내가 조금 더 고민하게 둬. 우리가 서로를 이해해서 사랑한 건 아니잖아. 그게 네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라면, 나한테도 테오도라 블레어를 사랑하는 방법이라는게 있으니까.
(조용히 앉아, 주위를 둘러보다가 거울로 자연스럽게 시선을 옮깁니다.)
그런데, 당신이 알고 있던 그 모습이 아닙니다.
거울 안에는 중년이 된 테오도라와 같은 나이로 보이는 ‘당신’이 있습니다.
페르디난드 F. 오닐:
SAN Roll
기준치: |
49/24/9 |
굴림: |
3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당신이 거울을 보고 있으면 차를 가져온 테오도라가 주방에서 나옵니다.
테오도라는 멍하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당신을 응시하더니 뒤늦게 입을 엽니다.
테오도라 블레어:... 페르디난드. ... 네가 나이를 먹으면 이런 모습이었구나. ... 이렇게, 나이를 먹고, 늙게 되는 구나.
그리 말하는 테오도라의 목소리에 어쩐지 물기가 섞여 들려옵니다.
페르디난드 F. 오닐:아, ... ...(거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제게 있었을 지도 모르는 미래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 할 시간 같은 게 있을 지도 모르지만. 물기 섞인 소리 앞에 그런 것은 전부 상념이지 않겠어요. 눈을 떼는 것은 쉽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려운 법입니다.) 지금 울어? 테오도라...
테오도라 블레어:... (입술을 꾹 다물었다. 우냐는 물음을 듣고나서야 정말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차를 내려 놓고 너에게 다가왔다. 네 주름진 손을 잡던 손이 위를 향해 얼굴에 닿았다. 자신이 보지 못한, 가려진 시간을 뒤좇아 가듯 그렇게 네 얼굴을 쓰다듬었다)
... 나, 네가 죽고나서. 나는 계속 살았어. 네가 죽었다고 나까지 죽을 순 없었어. ... 나 때문에 네가 죽었다고 생각하면 꼭 죽고 싶다가도... 그렇게 네가 살릴 생이면, 이미 내 것이 아니라 네 것이라 여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 그래서 살았어. 내 것이 아니니까, 더 소중히 여겨야 했어.
... 어떻게든 살아서. 공허감도 잊고 웃고 싶은 순간에는 웃고 울고 싶으면 울고 화내고 싶으면 화내고... 그렇게 살았어. 평범하게... 살았어. ... 네가 말한대로 다른 사람도 만났어. 사랑 도, 해본 것 같아.
... 아니, 해본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이 청혼한 순간, 그제야 알겠더라. ... 나, 그 사람한테서 널 찾고 있었어. (울컥, 목소리가 울음에 와르르 무너졌다) ... 나 좋다는 사람한테서 널 찾았어. ... 너랑 닮은 구석이 있으면 안도하고 없으면 당황하고. ...
... 나는.... 널 잊었다고 생각했어. 아픈 손가락이지만, 그저 염증 정도로 묻었다고 생각했어. 가끔 떠오르는... 그런 기억이라고. ... 근데... 하, 하나도 못 잊었어. 그대로였어. 달라진 것 없이 그대로... (목소리가 떨렸다.네 뺨을 만지던 손을 내려 제 얼굴을 가렸다. 어릴 때와 달린 주름진 손, 작아진 체구로 말했다.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갈무리하고 얼굴을 가린 손을 떼고 말을 이었다) ... 그래서 헤어지고, 생각했지. 이럴거면 그냥 잊지 않고 계속 기억해야겠다고. 억지로도, 시간으로도 지울 수 없으면 마음에 영영 담고 있자고. ... 나는 그렇게 살았어. 그렇게 중년이 되고, 노인이 됐어.
... 오늘은 유성우가 쏟아지는 날이었어. TV에서 이번의 유성우는 정말 특별하다며 마음에 간직한 소원을 말해보라고 연신 떠들썩했지. … 그날 나는 소원을 말한 거야. 그 옛날, 우리가 찍었던 크리스마스 날의 사진을 보면서,
테오도라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겨우 말을 꺼냅니다.
테오도라 블레어:역시 내 욕심이겠지. … 미안해.
너는 언제고 그 자리에서 젊은 시절의 너로 멈춰 있었는데.
당신의 삶은 죽음에서 멈춰 있었기에 만남에 대한 기억은 죽음에서 시작되었으나, 테오도라는 삶을 영위하고 있었으므로 머나먼 삶에서부터 당신을 만나러 온 것이었어요.
당신은 언제고 그 자리에서 젊은 시절의 당신으로 멈춰있었지만,
테오도라는 당신이 없는 세상에서 나이를 먹고, 하루를 살아가고, 어느덧 노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소망이 발휘한 믿음의 힘, 어떤 이름 모를 별이 선물한 이별의 기적입니다.
당신은 테오도라와 함께 이 선물을 계속 열어볼 건가요?
아니면, 테오도라에겐 미안하지만 이만 선물 상자를 닫도록 할까요.
페르디난드 F. 오닐:... ...(마시지도 않을 차를 제 앞에 가져다 두고. 한참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홀로 살았을까 싶은 거예요. 우리가 헤어지는 날, 그렇게 될 것을 알았으면 사랑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냈던가요.
홀로 둘 테오도라가 제 빈자리를 느낄 것 같아서요. 그러니 모진 말로 밀어냈는데,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밀어낼 일이었다면 테오도라를 사랑했을 일도 없었으리라. 하고, 결국 그런 식으로 하나의 결론에 다다르고 말죠. 아, ...테오도라 블레어의 인생을 사랑이라는 단어로 훔쳤구나. 그건 정말 온전하고 유일한 내 것이었구나. 그렇게.) ... ...아. 테오도라. 나는. ... ...
시간이 전부 해결할 줄 알았다. 제멋대로에, 네 관심 하나 받는 게 전부라 투정 부리는 사람 같은 거. 그런 건 정말 금방 바람처럼, 지나가는 사람처럼 잊고. ... ...그렇게 살아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 ...그 날 그렇게 죽기 싫었다고 하면 우습게 들릴까 싶다. 테오도라 네게 준 인생, 목숨. ...그런 건 하나도 아깝지 않아. 그렇게 바꾼 삶으로 내가 모르는 네가 거기 계속 있는 게 싫어. ... ...
테오도라 넌. 내가 결심한 것들은 다 소용 없게 만들어. ... ...잘 살라느니, 다른 사람 만나라느니. 그딴 말 앞으로는 못하겠어. 계속 날 닮은 사람 같은 거 쫓지 마. 아, ... ...고작 그런 거에 안도하고. 바라고... 네 것이 아닌 것 같으면 그냥 그렇게 둬. 그렇게 내가 네 유일한 사람인 것처럼 살아.
... ...내가 모르는 시간에 존재 할 거라면, 남들도 모르게 둬. 응? 테오도라, ... ...제발
(덮을 생각, ...방금 관뒀는데? 선물이든. 기적이든 다 상관 없고. 그냥, ...그냥. ...알잖아. 그런 거.)
테오도라 블레어:(너를 사랑하면 늘 나는 올곧게 서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널 제대로 붙잡고 있어야지. 욕심도 부리지 말고, 웃어 넘길 수 있을 정도만 내 바닥을 보여야지. 내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얼마나 마모 됐는지 들키지 말아야지. 들키지 말아야, 무너질 것 같은 너를 무너지지 않게 할 수 있겠지. 그건 강박이었다. 내가 누군가의 선이 된 것 같아서, 그 선인 내가 무너지면 너도 같이 무너지게 될 것 같아서. 우리가 겪어왔던 그 모든 서사가 결국에 아무것도 바뀔 수 없다는 마침표를 찍게 될 것 같아서)
(고개를 들어 너를 바라봤다. 내 보잘 것 없는 고백은, 너를 향한 변명이기도 했다. 잊어보려고 했고 강하게 살아가려고 했고, 사랑도 해보려고 했다고. 하지만 여느 변명이 그러하듯 결국 결론은 그렇게 되지 못한다로 끝이 났다. 그렇게 말하며 두려웠다. 네가 나를 사랑하는 걸 알고 있지만, 무너진 나도 사랑하는지 확신이 없어서. 그 확신을 하기에는 우리는 너무 일찍 헤어지지 않았나. 내가 욕심도 많고 쉽게 무너질 몸둥아리를 붙들고 생을 사는 사람이라 하면 네가 또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버리지 않을까. 그런 걱정을 했는데 너는 그 걱정을 지워버리듯 말을 잇는다)
.... 아. (뒤늦게 말이 흘러나갔다. 싫다고, 내가 싫은 것이 아니라. 곧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나약한 내가 싫은 게 아니라 네가 모르는 내가 있는 것이 싫다고... 그 말을 듣고나서야 결국 참던 눈물이 소리 없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한번 눈물이 흐르니 눈물은 몇 번이고 뺨을 타고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이미 그러고 있어. 너는 모르겠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그러고 있었어. (떨리는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비로소 나는 내 전부가 너에게 사랑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느낀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너무 오랜 시간... 순간 무언가 떠오른듯 걸음을 옮겼다. 곧 다시 돌아왔을 때에는 사진첩이 들려 있었다) 너한테 보여주고 싶은게 있어.
사진첩을 넘기면 수십 년의 사계절이 돌고 돌아 사진첩에 새겨져 있습니다.
모든 풍경은 당신이 보지 못했던 수많은 장소들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진을 꺼내 뒤집어본다면, ‘너와 함께 가고 싶었던 곳.’이라는 짧은 코멘트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진은 다른 풍경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풍경만이 찍혀있고 테오도라가 사진의 주인공인 것은 없네요.
당신과 가고 싶은 곳을 기록하느라 정작 자신의 이야기는 기록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페르디난드 F. 오닐:어떻게 알았겠어, 테오도라. ... ...욕심 많고 아둔한 나잖아. 알고 만났으면서. ...(저 자신은 웃어야 했던가요. 그 얼굴에 우울과 하강을 담을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가볍게 올라간 입꼬리와 비교되는 손 끝의 떨림을 뒤로 하고 조심스럽게 눈물을 닦아주고 나면 어느덧 거리는 조금 더 가까워 진 채 있지 않겠어요.)
... ...(사람을 전부 무너트려서라도 저 자신과 같은 높이에 두고 싶다고 한 사람이, ...죽음 한 번 겪었다고 어딜 가겠어요. 제 말대로 눈 멀어 아둔하고, 욕심 부리지 않아야 할 것을 욕심 부리는 이로 끝끝내 남을테지요.)
여기저기 많이 다닌 모양이다. ... ...같이 다녀야 했는데. 미안해, 테오도라. 이번만 봐줘.
테오도라 블레어:늘 봐주고 있잖아. (그리 농조로 붙이고 네 곁에 붙어서 앨범을 넘겼다. 이건 바닷가고 여기는 프랑스에 있는 마을인데. 하고 이런저런 말을 덧붙였다. 내 전부가 사랑받을 수 있다고 확인 받으니 들뜨는 수밖에 없었다. 그 젊은 시절에 멈춰선 너와 달리 나는 나이를 먹은 노인인데 네 앞에서는 여전히 어리던 그시절로 돌아가버렸다)
아, 여기 들판 정말 예뻤어. 의도하고 찾아간 곳은 아닌데... 길을 헤매다가 찾았거든. 한적하고 조용해서... 네가 마음에 들 것 같았어. (네 어깨에 슬 기대고는 말했다. 생을 살며 온통 네 생각이었다 고백하는 수준이었으나 이제와 아니라 부정할수도 없지 않나)
... 아, 정말. 사진 보니까 억울하네. 이렇게 좋은 곳 다녀와 놓고 여기서나 거기서나 네 생각만 한 거잖아. (괜히 그리 말하고는 뚱한 얼굴로 널 바라봤다)
페르디난드 F. 오닐:아, 테오도라. 지금 누구 탓을 하는 거야. ...난 하라고 한 적 없는데? 다른 사람 만나도 된다고, 잘 살고 그렇게 지내라고 했던 사람 무시하고 그렇게 산 건 누구야.
정말 억울한 사람이 누구인데, ... ...그렇지 않아 테오도라? 탓하려면 조금 더 이른 시기를 탓하던가 해. 하지만 싫겠다. 날 사랑하잖아.
... ...(그렇지, 하는 질문 따위는 붙지 않고. 뻔뻔하고 얄미운. 그 확신에 찬 목소리를 하고. 제게 편히 기대도록 자세를 고칩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있을 거잖아. ... ... 내가 그랬던 것처럼. 네 마음에 들 것 같은 행동만 고르고 또 골라서, 그렇게 눈에 채우고. 생각하고. ... ...
(잠깐 말을 멈춥니다. 그러고선 가볍게 웃는 소리를 냈던가요, 다음 일 같은 것은 정말 모르겠습니다.) ... ...내 생각 많이 해. 난 네 생각보다 더 일찍부터 그랬어.
테오도라 블레어:... 어떻게 한마디를 안 져요. 한마디를. (그리 말하며 얄밉다는 듯 바라봤다. 하지만 네 말이 틀리지 않았다. 널 사랑하니까, 네 말대로 살 수 없었던 거니까. 한숨을 폭 쉬고 다시 네 어깨에 기댄채로 말을 이었다)
(앞으로 그렇겠지. 아마 내게 남은 생을 다 써서 널 사랑할 것이다. 어쩌면 기억이 이어진다면 그 다음생에도 널 찾을 것이다. 너와 똑같이 사랑할 수 없어도, 적어도 나는 똑같이 널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네 웃음을 따라하듯 자신도 웃음을 흘렸다) ... 이미 널 떠올리는게 일상이야. 호흡 같고. 이정도로도 만족 못하겠어?
페르디난드 F. 오닐:내가 이기게 해준 적도 없으면서... ...그래도 틀린 말 한 적 없지 않나 싶다.
(만족 못하느냐고 하면. 사실 그런 것보다는 함께 웃고 울고. 함께 살며. 그렇게 사는 것이 더 좋았으니 만족 못할 법 하지. 사람은 바닥에 있는데, 어째 원하는 건 다른 사람이랑 다르지가 않아. 웃기다 싶기도 하고. 이게 또 억울하고.)
... ...재미없게 살 생각이었는데, 손가락에 반지 나눠끼고 또, ...같이 살 집도 고르고. ...남들 하는 건 다 하고. 그렇게 재미없게 살 생각이었는데. ... ...그래, 만족 못해.
테오도라 블레어:... 딱,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비극이었지. 죽음으로 갈라진 젊은 연인 말이야... (자조하고는 네 어깨에서 고개를 들었다) 역시 그런 재미있는 이야기보다 네 말한것처럼 재미 없는 삶이 좋은데. ... 어렸을 때는 재미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노래했는데 살아보니 재미없는 삶이 가장 탐나는 거더라.
... 반지도 나눠 끼고, 같이 살 집도 고르고. 보고 싶을 때보고, 입 맞추고 싶을 때 입 맞추고.... (할 수 없었던 일. 하고 싶었던 일. 소란스러운 마음을 감추듯 웃으며 농도로 말을 붙였다) 이중에서 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는데. ... 입 맞춰도 돼?
페르디난드 F. 오닐:남들 좋은 구경 시키는 건 딱 질색인데, ... ...아, 테오도라. ...너무 화내지 말고, ...난 그런 결말이여도 꽤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거든. 언제 또 그렇게 사랑하고, ...사랑 받고. 어렵잖아.
잘 했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 ...(제 앞머리를 문지르고는) 정말이야. 너랑 결혼해서, (결혼해서 저 얼굴이 질렸네 어쩌네, 할 때까지 살고 그럴 계획이 있었던 것 같은데.) ... ...평범하게 미래 계획이나 꾸리면서 살고 싶었어.
(어쩐지 머뭇거리고는, ...) 킹스크로스 역에서 다정하게 서서 호그와트 가는 아이, ... ...(눈치) 배웅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테오도라만 괜찮으면, ... ...언젠가 우리가 준비가 되면, ...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잘 안풀리더라.
(...과하네, 떨떠름한 얼굴로 말을 끝낸 뒤에야 다시금 입꼬리를 올립니다.) 하고 싶은 만큼, ...어차피 몇 번 해도 다 좋아하잖아.
테오도라 블레어:너 진짜... 안 그런 척 해 놓고 벌써 거기까지 생각했던 거야?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하자고 할 때까지 생각도 안하고 있었으려나 싶었는데. 이 얼굴로 그런 생각을 했다고 생각하며 웃음이 절로 나왔다)
시간이 있었으면, 네 말하는 대로 네가 원하는대로 다 이뤄졌을거야. 너 닮은 아들이었으면 좋았을 걸, 너도 속 한 번 썩혀봐야 내 심정 알테니까 말이야... (상상하고는 웃긴지 어깨를 작게 떨며 웃었다)
잘 안 풀린 건, 여전히 슬프고 아쉽고 억울하지만... 그래도 지금 난 너랑 같이 있잖아. 그러니까 이제는 할 수 있는 걸 생각할래. (그 말이 끝나자 고개를 조금 더 들어 네 코앞으로 다가갔다. 숨이 닿을 거리에서 잠시 멈추고는 다시 작게 웃었다) ... 아, 긴장되네. ... 바보 같아.
(긴장감에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웃고는 이내 고개를 마저 들어 네 입술에 입 맞췄다. 심장이 떨리고, 첫 입맞춤을 하는 것처럼 서툴렀다. 한 손으로 네 손을 꽉 잡은 채로 가볍게 닿았던 입술을 떼어냈다)
페르디난드 F. 오닐:시간이 있었으면 너도 알게 되었을 거 같지 않나 싶다. 나한테 너랑 결혼하지 않을 거냐고 물어봤었잖아? 나는 당연히 하겠다고 했고, ... ...그때는 그게 그렇게 먼 미래도 아니니까.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결혼이니 뭐니 해도. 실은 테오도라가 제게 관심만 주면 다 괜찮다고 생각할 때도 있으니까요.)
... ...테오도라. 아무렇지 않게 무서운 말을 하네. 만약 그랬다면, ... ...난 네 옆에서 엄마 말 잘 새기라고 어르고 달래는 아버지가 되었겠지. (웃는 얼굴로 한숨을 푹 쉬고. 닮았으면 외모만 닮아야지, 성격을 닮으면 안되는데. 하는 자잘한 소리 같으 것이나 붙이고.)
... ...그런 삶이 온 적도 없는데, 가져본 것 같기도 해. ... ...그렇게 살고 싶었나보다. (웃는 얼굴에는 항상 설레는 것 같죠. 제 말대로, 언제 해도 전부 좋아하고. 싫은 적이 없고 그러니까.
그러니 이제 막 걸음마 하는 아이처럼 붙들고 있으면 늘 처음처럼 사랑하고, 또 그만큼 긴장되는 일입니다.)
그럴 리가 있겠어, 테오도라. ... ...아니면 둘 다 바보라고 하던지 해.
(서툰 입맞춤에, 여전히 머뭇거리며 붙든 손. 그냥 지나가며 하면 그럴려니 할텐데, ...저를 붙들고 하겠다고 하니 유독 붉게 얼굴이 타는 것도 당연하죠. 서툴고 가볍게 떨어지는 입을 쫓아 입맞춤이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아주 짧게 떨어지고 나면. 제 풀에 얼굴을 푹 숙이고 마는 일입니다.) 아, ... ...미안.
테오도라 블레어:(떨어진 입술에 아쉬움을 느끼기도 전에 다시 와닿았다 떨어지는 입술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 곧 이어지는 미안하다는 말에 뒤늦게 현실로 돌아온 얼굴이 붉게 상기됐다. 입술을 우물거리다 이내 잡은 손을 놓고 네 숙인 고개를 들어올려 다시 입을 맞췄다. 서투름과 민망함, 그런건 다 잊어버리고 그저 조금이라도 더 닿아있고 싶다 생각했다. 나보다 더 서툴게 입을 맞춰온 네가 방아쇠를 당긴 것처럼, 뺨에 닿았던 두 손은 네 목을 끌어안듯 하고 네 입 속을 파고 들었다. 아주 오랫동안 갈증에 시달린 것처럼, 네가 유일히 다시 만난 오아시스인 것처럼)
... 뭐가 미안해? (한참 그렇게 입을 맞추고 입술을 떼어내며 물었다. 여전히 네 목을 감싼 채 끌어안고 나이를 먹었어도 달라지지 않았던 붉은 눈으로 널 응시했다) 나도 네가 하고 싶은 만큼 해도 좋아할텐데. (웃으며 네 목에서 팔을 풀었다. 일을 저지르고 나니 남는 묘한 민망함에 괜히 네 어깨에 다시 기대고 앨범을 넘겼다)
페르디난드 F. 오닐:(무언가를 아주 오래 찾은 사람처럼 굴었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혹은 이제야 바라는 걸 찾은 사람처럼 굴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상기된 얼굴을 들어 멀거니 바라보고 있자면 그제야 제게 일어난 일을 알아 차리고, 또 그게 마냥 싫지만은 않아 언어를 잃은 이처럼 묵묵히 있다가 혹은 애꿎은 얼굴로 억울한 이처럼 숨을 쉬기도 하고요. 언제나 그랬습니다. 제 서툰 것은 부끄러운 일이나 바라고 마지 않는 일들에 무엇이 또 부끄러운 일이던가요.)
... ... 아무것도. (부끄러움보다는 한 번 더 하고 싶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데, 그런 것은 부끄럽지 않던가요. 뻔뻔하게도 그 표정을 하고서, 멀어지는 거리를 가늠하며 넘어가는 앨범으로 시선을 돌릴 뿐이죠.) 할 거 다 하고 왜 민망해 해? ... ...
테오도라 블레어:... 몰라. 너는 왜 안 부끄러워 해? (살짝 째려보다가 이내 다시 앨범을 뒤적였다. 곧 어떤 사진첩의 마지막 장에 도달하고, 막 찍은 사진, 아직 마르지 않아 뚜렷한 풍경은 보이지 않지만 서서히 어떤 하늘의 모습을 형성하고 있는 사진을 가리켰다)
이 사진... 이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내가 그랬잖아, 유성우가 내린 날 소원을 빌었다고. 그때 옆에 있던 사진기로 찍었던 사진이야.
페르디난드 F. 오닐:왜... ...(뭔가 억울한 듯 따지려다가 조용해진 모습으로 묵묵히 넘어가는 앨범을 바라 볼 뿐이죠.) ... ...
솔직히 말해도 돼, 테오도라? ... ...난 네 소원이 이뤄졌다기 보다는, ... ...네가 죽었다고 하는 게 더 신빙성 있어보인단 말이야.
테오도라 블레어:하지만, 죽은 기억이 없는 걸. (네 말에 그저 웃었다) 그리고....
그간 거쳐왔던 푸른 하늘이 스쳐 보이고, 바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청춘과 테오도라의 삶이 새겨진 사진, 당신은 그 찬란한 끝자락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테오도라의 말이 이어지기도 전, 곧 사진 속 별이 움직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게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당신을 기억하며, 당신을 그리워했고, 당신에게 보여주기 위한 사진을 찍었던….
테오도라 블레어:네가 마지막까지 함께 늙었다면 이런 모습이었구나.
방금, 그 집에서는 장난스레 웃고 있었던 테오도라는 결국 다시 눈물을 터트립니다.
방울져 흐르는 눈물은 턱을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집니다.
페르디난드 F. 오닐:아, ... ...테오도라. (순간 미안해, ...하고 말 할 뻔 한 것은 저 혼자만의 비밀로 하기로 해요. 언젠가 테오도라가 제게 해줬던 말처럼. 미안하다는 말로 해결될 것이 아니니까.)
그 겨울날,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연인을, 영원히 과거에 머무를 젊은 연인의 미래를 보았잖아요.
눈물을 흘리는 테오도라는 당신의 손을 잡고, 고마워라고 중얼거리듯 말을 뱉습니다.
주름진 테오도라의 손을 잡자 당신의 손에 든 주름도 느껴집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당신의 발치에 카메라가 걸립니다.
테오도라 블레어:사진. ... 찍을까? 내 마지막 사진이 되어줄래?
여긴 그저 환상의 공간, 사진을 찍어도 현실에 남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그 많은 풍경을 찍어온 테오도라에게, 마지막으로 당신을 찍을 기회를 주는 것은 나쁘지 않을 테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는 다시 이별하게 될 겁니다.
소원은 어디까지나 늙은 당신을 보고 싶다는 것,
사진을 쫓아 우리는 앨범 마지막 장까지 왔습니다.
그렇다면 이후 이어질 이야기가 뻔하지 않나요.
어떤 별이 우리의 소원을 들어줬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앨범의 마지막장, 당신을 좇던 앨범은 끝이 났습니다.
페르디난드 F. 오닐:나 혼자? 아니면 함께?... ...그게 전부 무슨 의미가 있어, 테오도라. (
결국 마지막이 되는 것은, 싫다고. 이렇게 말할 것을 둘러 말하는 것은 제 이기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혹은 끝내 버리지 못해 테오도라에 대한 미련 때문일까요.
제 본디 신 같은 것 믿지 않아, 소원도. 소망도 그런 것 따위는 사람이 아닌 것에는 빌지 않죠. 존재 여부도 불확실한 것에 절벽에 몰린 인간이 그것에 빌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다고요.
그러나 만약 저 자신이 그런 한낱 미신 같은 것에 기대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건. 그건 정말로, ...제 발판을 엎어서라도 새로 세울 이가 아니면 안되는 법입니다.
테오도라 블레어는 어떤 사람이었던가요. 제 인생 전반을 따져, ...매일 저 자신을 전복해서 뒤흔드는 사람? 질서를 망가트리고. 그것이 잘못 되었음을 시인할 수 밖에 없게 만들고. 또, ...
제 바닥을 전부 메꿔서라도 사랑해야만 했던 사람.)
아, ... ...테오도라. 내게 두 번째 기회가 있다면 운명 같은 건 뒤집고, ... ...그렇게 살래. ...재미라고는 전혀 없는 그런 평범함으로, 그렇게 살다 죽을래. ... ...
페르디난드 F. 오닐:너랑 함께 늙어 가면서, ... ... (일평생 슬퍼 운 적 없다죠. 억울하고 화가 치밀 때만 눈물을 흘리는 이로 자랐으니, ...그럼 제 눈가에 맺힌 것은 무엇이라고 할까요. 오기? 인간이 한낱 소원 따위에 매달려서 빌어야만 하는 상황에 도달했음에 대한 오기와 ...)
... ...너랑 함께 늙어가면서,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니 네게 온 적도 없는 시간을 왔던 것처럼 남기지 마. (오기와 소망이요? 결국 테오도라가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던가요. 아무렴요. 아둔하게 사랑하고, 그것에 만족하며 살 수 있게 되었으니까.
하나 분명한 것은, 존재하지도 않은 시간을 테오도라에게 남겨주긴 싫은 거죠. 오늘까지에요. 제멋대로 구는 것은, ...이 다음에 이별하게 되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만날테니까. 그때는 조금 더 이르게. 저 자신이 먼저 사랑하며 살겠다고. 그러니 무심하게도, 테오도라에게 카메라가 돌아가는 일은 없습니다.)
그때가 오면... ...질릴 정도로 네 마지막이 되어줄게. 미안해 테오도라. (그저 사진 한 장을 남겼을 뿐이죠. 페르디난드 오닐이라는 마침표에 단 한 번 있던 사람, 테오도라 블레어. 평생 테오도라 블레어라는 사진 하나 남기지 않은, 평생의 연인을 위해.)
테오도라 블레어:... 난, 다음 생 같은 거 필요 없는데. (손을 뻗어 네 눈가를 문질렀다. 네가 이런 표정으로 이런 말을 한 것이 마냥 생경했다. 조심스레 주름진 손으로 네 눈가를 쓸며 말했다) ... 나는 지금이 필요해. 나... 너무 오랜 시간 기다렸어. 네가 준 생이라 이까고, 값지게 보내고 싶어서 외로워도 참고 슬퍼도 무너지지 않았어. 그러니까... 나한테
지금의 너를 줘.
다음 생에는 다른 사람을 사랑해도 좋고... 나 같은 거 평생 몰라도 돼. 거기까지 욕심 안 부릴 거야. 그러니까... 지금의 널 줘. 내가 사랑했던 소년을 나에게 줘.
네가 날 구한 그날부터, 이미 나는 네 것이지만. 네가 좋다고하면 나는 내 남은 모든 생도 너에게 줄 거야. ... 돌아가지 못해도 좋아. 나 너 없는 삶에서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는 만큼 행복해졌으니까.
... 우리 이제 그만 헤어질까?
페르디난드 F. 오닐:... ...받고 싶지 않아? 테오도라, ... ...나는 네 다음 생도. 그 다음도. 전부 내 것으로 둘 수 있으면 좋겠다. (울음 섞인 목소리가 참 침울하게 속삭이죠. 눈가에 맺힌 눈물이 쓸려 나가는 것을 느끼며, 할 수 있는 말은 없어요.) 아니면 이번 생만이 전부인 것처럼 내게 딱 하나만, ... ...주어지면 좋겠다.
아. 테오도라. 우린 참, ... ...달라. 예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닿아 본 적 없는 거 같아. 그래도 테오도라 너만은 알지?
... ...사랑해. 그러니 줄게. 좋고 싫고. 내 의지를 떠나서, 네가 원한다면 가져도 돼.
그게 진정 네가 바라는 거라면 (간극) ... ... 나는 네 뜻대로 할게.
당신이 떠난 삶에서 행복해지기 위해 웃었을 겁니다.
상냥한 이별 대신, 상냥한 이 별에서, 함께 살아가도록 할까요.
두 사람이 그러자고 동의하면, 별은 두 사람의 소원을 들어줍니다.
찬란함이 가득한 겨울, 시리도록 푸른 하늘 아래 두 사람이 서있습니다.
그날, 당신이 생을 마감했던 젊은 날의 모습으로.
엔딩 B 사랑해 마지 않은 사람에게, 그 무엇보다 상냥한 이 별을.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두 사람만의 삶을 살아갑니다.